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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재 추방 운동의 효시가 된 문송면 열사의 죽음
지난 7월 2일은 수은중독 산업재해로 1988년에 사망한 문송면 열사의 기일이었습니다. 허영구의 모란공원 열사열전, 이번에는 문송면 열사의 묘소를 찾았습니다.
마석 모란공원 열사 묘역을 따라서 왼쪽 길 임도를 따라 올라오면 제일 끝 쪽 초입에 문송면 열사가 모셔져 있습니다. 문송면 열사는 170여 분이 계시는 마석 모란공원 열사 묘역 열사들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산재로 돌아가신 분입니다. 14살 때 중학교를 졸업하고 야간 고등학교 다니면서 공장에 다닐 목적으로 충남 서산에서 영등포 협성계공에 입사하여 수은 주입하는 그런 노동을 하다가 2개월 만에 수은 중독으로 쓰러지시고 네 군데 병원을 전전하면서 산재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협성계공의 노동 현실, 작업 현실이 엄청나게 열악했고 산재 사망이나 산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당시 노동부가 이 문제에 대해서 전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문송면 열사는 6개월여 동안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서울대병원에서 마지막으로 산재를 판명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깨어나지 못하고, 1988년 7월 열다섯 살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그가 1987년 12월에 노동자 대투쟁이 벌어졌던 그해에 상경하여 그 당시에 노조가, 제대로 민주노조가 만들어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산재로 인정받고 또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다음 해 1988년 7월 2일 영면에 드셨고 이곳 모란공원에 모셔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이 땅의 많은 산재 관련된 의료, 시민사회단체, 노동단체 들이 7월을 산재 추방의 달로 정하고 오랜 기간 동안 이 땅의 산재 추방을 위해서 노력해 왔습니다. 문송면 열사의 죽음은 한국 산재 추방 운동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2002년부터 유엔이 정한 세계 산재 추방의 날이 4월 28일로 정해졌기 때문에 그동안 7월에 해오던 산재 추방의 행사를 4월 28일로 모아서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문송면 열사 이후에도 모란공원에는 여러 열사들이 계시고 그 열사들 중에서 산재로 인해서 돌아가신 열사들이 여러 분 계십니다. 가장 최근에는 김용균 열사가 산재로 인해서 목숨을 잃고, 전태일 열사 묘소 바로 가까이 모셔졌습니다.
문송면 열사 이후에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산재 사망률 세계 1위라고는 오명을 갖고 있고 현장에서는 하루에도 여러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문송면 열사 이후의 산재 추방 운동이 범국민적으로 법과 제도를 통해서 또 노동자 대투쟁의 주요한 과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문송면 열사 묘소에서 한번 다시 갖게 됩니다.
- 님을 위한 행진곡 국악 편곡 Ver. (다큐 '밤은 노래한다' 미공개 영상) https://youtu.be/jj-SB5zeJ94
*국악편곡: 이경섭 / 대금: 신경호 / 가야금: 정현정.이세련 / 아쟁: 노시선.김소영 / 거문고: 박보경 / 해금: 박선희
기획: 류증희, 허영구
출연: 허영구
촬영: 미디어 데모스
편집: 류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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