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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의 어머니를 넘어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로 불리시던 이소선 어머님. 허영구의 모란공원 열사열전에서는 이소선 어머님은 한국의 노동자 민중운동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여성운동가 또 여성 노동 열사, 여성 전사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전태일기념관을 찾아 왔습니다. 청계천에 위치한 전태일기념관에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에 이소선 어머님의 여러가지 활동에 관한 기록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여기 있는 사진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전태일 열사가 오늘날의 전태일 정신으로 뚜렷하게 살아남아 우리 모든 노동자들에게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불꽃으로 피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라고 불렀지만 사실은 투사였고 전사였습니다. 이소선 어머님은 아들의 분신 이후에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해 말 청계피복노조를 건설하고 많은 노동자들 함께 이 땅의 80년대 엄혹한 시절에 민주노조를 건설하는 데 온몸을 바쳤습니다. 청계피복노조는 80년대 신군부에 의해서 해산당하기도 했지만 결국 민주노조를 획득했고 1998년에 서울의류노동조합으로 통합할 때까지 27년 동안 이 땅의 민주노조운동의 선구자였습니다. 그 선두에 이소선 어머님이 있었고 어머님을 넘어서서 투사로서, 전사로서, 노동자로서 이소선 열사가 있었다 라고 하는 사실을 오늘 전태일기념관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님이시자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로 불리셨던 이소선 여사의 묘소입니다. 이소선 어머니는 전태열 열사를 낳으셨지만 또 한편으로 40년의 투쟁의 역사를 잉태하셔서 전태일 열사를 탄생시켰습니다. 이소선 어머님이 없었다면 오늘의 전태일 열사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돌아가시고 이 묘소도 전태일 열사 묘소 바로 10미터 뒤에 이렇게 위치하고 계십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식이나 아들을 껴안은 그런 모습으로 이 아늑한 모란공원에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영면하고 계십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전태일 열사 묘소를 참배할 때마다 이소선 여사의 그런 정신, 이소선 열사와 전사의 정신을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소선 열사는 40여 년의 투쟁과정에서 청계피복노조를 건설하고 지키고 그리고 모든 민족 민주 노동 열사들의 투쟁에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세 차례 구속이 됐고 경찰에 연행된 것만 해도 수백 차례 경찰에 연행, 체포되는 그런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말하자면 거리의 투사이셨고 그야말로 앞장서서 싸우는 전사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소선 어머니로 기억하고 기록하지만 그 정신만큼은 열사이자 전사이셨고 고리키 [어머니]에 못지않은 그야말로 한국의 노동자 민중운동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여성운동가 또 여성 노동 열사, 여성 전사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님을 위한 행진곡 국악 편곡 Ver. (다큐 '밤은 노래한다' 미공개 영상) youtu.be/jj-SB5zeJ94
*국악편곡: 이경섭 / 대금: 신경호 / 가야금: 정현정.이세련 / 아쟁: 노시선.김소영 / 거문고: 박보경 / 해금: 박선희
기획: 류증희, 허영구
출연: 허영구
촬영: 미디어 데모스
편집: 류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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